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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자책] 파도에 새겨진 시간 5화 - 미리 보기

by peytonkim 2026. 7. 31.

글 : Peyton Kim , AI(Gemma4)

그림 : Copilot, Gemini

본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창작된 허구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지명 단체 및 사건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었습니다.

1903년 ~1905년 대한제국 시절 가장 먼저 일제 강점기를 맞이한 울릉도와 독도! 윤서의 기억을 따라 비참했던 역사의 기록을 되짚어 볼 시간입니다. 멸종되어 버린 강치!!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그 고귀한 생명체의 숨결을 지금 만나 보시죠.


104. 바다 위 은빛 물결

 

태하항의 자갈밭 위로 부서지는 햇살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내리쬐는 대기 속에는 잘 익은 과실의 단내가 섞여들었다. 비단결 같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수면 위로 잘게 부서진 물비늘이 일렁였다.

윤서 모녀는 춘식의 뒤를 따랐다. 한쪽 팔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거친 파도를 가르던 노련한 어부였던 그는, 이제 해녀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길잡이가 되어 있었다. 사공 만덕과 필성이 노를 잡은 범선은 울릉도의 해안선을 따라, 마치 거대한 짐승의 등 위를 걷듯 유연하게 미끄러져 나갔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참 좋습니다.”

만덕이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향해 나직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잔잔한 물결에 씻겨 나갔다.

“울도의 바다는 변덕이 심하다오. 날씨와 물때를 항상 눈여겨봐야 하죠.”

춘식이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그의 손가락 끝이 수면 위를 유영하며 물길의 맥을 짚어내는 모양새가 기묘했다.

“육지 사람들은 이 바다가 그저 깊고 무섭다 하지만, 요령만 안다면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보물창고라지요.”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대하듯 조류를 살폈다. 순임은 그의 말 한마디가 가진 무게를 가슴에 새기며 경청했다. 대상군 해녀들에게 바다의 흐름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곧 생사의 갈림길임을 알기에 더욱 간절했다.

“내일은 물살이 좀 센 곳이라도 전복이랑 소라가 많이 나는 곳으로 가고 싶은데, 어디가 안전하고 좋겠소?”

순임이 기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춘식은 잠시 시선을 돌려 먼 곳을 응시했다.

“저기 뾰족하게 솟은 세 개의 바위 근처는 물살이 복잡해 보이지만, 그 안쪽은 의외로 잔잔해서 전복들이 집을 짓고 살기 좋은 명당입니다. 다만, 물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저 바위 밖으로 나가선 안 됩니다.”

“세 개의 바위라니……. 참 신비로운 곳이군요. 그 안쪽이라면 윤서도 안전하게 물질을 배울 수 있을까요?”

해란이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춘식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마치 먼지 쌓인 기억의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설에 따르면 말이지요….”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울도 풍경에 반해서 올라갈 시간을 놓쳐버렸지 뭐요. 그 바람에 진노한 옥황상제님이 선녀들을 돌로 만들어 버렸다고 해서 ‘선녀 바위’라고도 부릅니다.”

“선녀들이 바위가 되었다고요? 엄마, 내일 그러면 내가 먼저 들어가 볼래요!”

윤서의 해맑은 외침이 파도 소리를 뚫고 터져 나왔다. 해란은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 윤서야.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삼선암 너머 촛대바위 근처는 절대 혼자 가서는 안 된다. 옛날에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이 눈물을 흘리다 굳어버린 바위라는데, 그 지극한 효심 때문인지 그 주변의 파도는 유독 서글픈 울음을 토한다더구나.”

춘식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윤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먼바다로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 날의 기억이 환영처럼 밀려왔다. 해란은 그런 딸의 등을 토닥이며 춘식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겨 넣었다.

“도동항에서부터 저동항 일대를 보니 절벽 아래로 펼쳐진 바다풀이 어찌나 무성한지 마치 비단 숲 같습니다. 이곳도 물질하기 괜찮겠소?”

순임이 절벽 주변의 바닷속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허어, 귀신 같으십니다. 이 도동항 일대와 저동항 일대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 해조류가 숲을 이루고 있어 씨알 굵은 전복이 지천이지요. 하지만 물길이 깊어지는 곳이 있어 늘 주의해야 합니다. 좀 더 안전한 곳을 원하시면 저기 사자바위 근처가 괜찮습니다. 커다란 바위가 바람을 막아줘 물살이 잔잔하고 시야가 확보되어 안전하게 작업하기엔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춘식의 시선은 어느덧 동쪽, 수평선 끝자락에 걸린 독도를 향했다. 그곳은 마치 신의 영역처럼 아스라했다.

“하지만 진짜 노다지는 저 앞, 동쪽 끝에 보이는 섬, 독도라오.”

“들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동쪽 끝에 있는 정말 아름다운 땅이라고.”

옥분이 춘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춘식은 경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요. 옛날부터 울도 사람들은 독도를 신성하게 여겼지요. 바다를 다스리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그곳을 지나가다, 풍경에 반해 머물렀다가, 훗날 용이 승천하면서 바위에 큰 구멍을 뚫어 놓았다고 하죠. 현재까지도 독도에는 ‘구멍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독도에서도 특별히 조심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경청하던 명옥이 궁금한 듯 물었다. 춘식은 엄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요. 독도는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매일 머무는 자리를 달리해야 합니다. 바람이 거세지면 동도와 서도를 번갈아 가며 작업을 하되, 물살이 너무 거칠어지면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신해야 합니다. 날씨가 좋고 파도가 잔잔한 날에는 동도 연안 얕은 바다에 들어가 보세요. 햇살이 바닷속까지 훤히 비쳐서 질 좋은 미역과 손바닥만 한 대형 전복을 건져 올리기에는 그만일 겁니다.”

춘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무리를 지었다.

“엄마! 물개예요!”

윤서가 수면 위로 솟구친 무언가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 순수한 외침에 배 위의 어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렸다. 물개 한 마리가 배의 궤적을 따라 유연하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저건 물개가 아니고 강치란다.”

춘식은 담담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정정해 주었다.

“강치요?”

“그래. 옛날에 울도 사람들은 저들을 ‘가제’라고 불렀지, 동해를 지키는 수호신이라 믿었기에 함부로 잡지 않았단다. 지금은 강치라고 부른단다.”

춘식이 말할 때마다 윤서의 눈동자는 생기를 머금고 반짝였다.

어느덧 배는 독도의 품 안으로 들어섰다.

“우와아~~~”

윤서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는 강치 수천 마리가 모여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요. 강치들이 마치 반짝이는 조약돌 같아요.”

윤서의 천진한 표현에 춘식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저기 강치 중에 가장 큰 놈이 앉아 있는 바위 그곳이 바로 가제 바위란다.”

“가제 바위요?”

윤서가 호기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저 바위가 바로 강치들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지. 덩치는 산만 해도 성격이 어찌나 순하고 영리한지, 우리 어부들이 지날 때면 동글동글한 눈으로 쳐다보며 푸르르 소리를 내어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 저 녀석들이 노니는 곳이 사시사철 물고기가 넘쳐나는 최고의 어장이야. 강치는 이 바다에서 함께 해온 오랜 동무이자 우리 삶의 일부라오.”

춘식의 온화한 목소리가 파도에 실려 전해졌다. 윤서 모녀는 마치 거대한 신화 속 한 장면이 현실로 펼쳐지는 듯한 경외감에 휩싸였다.

그때, 대왕 강치의 거대한 몸체 뒤편으로 작은 생명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새끼 강치였다. 녀석은 동그란 눈망울로 배를 응시하다가 윤서를 발견하자 기쁜 듯 꼬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엉! 엉!”

“강치야!”

윤서가 그 작은 생명을 알아보고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푸른 울릉도와 독도의 바다는 단순한 물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과 신비로운 생명체들이 서로의 숨결을 나누며 빚어내는,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하모니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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