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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자책] 파도에 새겨진 시간 2화 - 미리 보기

by peytonkim 2026. 7. 31.

글 : Peyton Kim , AI(Gemma4)

그림 : Copilot, Gemini

본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창작된 허구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지명 단체 및 사건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었습니다.

1903년 ~1905년 대한제국 시절 가장 먼저 일제 강점기를 맞이한 울릉도와 독도! 윤서의 기억을 따라 비참했던 역사의 기록을 되짚어 볼 시간입니다. 멸종되어 버린 강치!!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그 고귀한 생명체의 숨결을 지금 만나 보시죠.

 


 

1장. 울도의 새벽, 꺾이지 않는 숨

101. 바다의 기적

 

1903년의 봄, 바다는 그날따라 유난히 투명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어린 윤서는 어머니 해란의 품에 안긴 채 울릉도로 향하는 범선 위에 서 있었다. 배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은 봄 햇살은 수면 위에서 잘게 부서졌고, 높고 푸른 하늘 위로는 조각구름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흘러갔다. 코끝에는 짠 내음과 섞인 온화한 바닷바람이 닿았다.

낡고 허름한 범선은 사공 만덕의 노련한 손길을 따라 거친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 그는 소금기에 절어 거칠게 터진 손으로 노를 움켜쥐었다. 단단히 틀어 올린 상투 아래로 흩날리는 수염, 그리고 구릿빛 피부 위에 깊게 파인 주름은 그가 견뎌온 모진 세월의 기록이었다.

그의 곁에서 젊은 사공 필성은 묵묵히 짐을 정리했다. 잔머리 하나 없이 매끈한 상투 아래, 면도를 마친 그의 얼굴은 청춘의 맑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먼지에 쓸려 얼룩진 하얀 무명옷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 곧은 움직임은 배 위의 긴장감을 차분하게 눌러주는 힘이 되었다.

배 안에는 목면과 소금, 쌀이 가득 실려 있었다. 울릉도에서 모두 귀한 것들이었다.

배 위 한편에는 제주에서 온 해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구를 손질하고 있었다. 머리를 단단히 묶어 올린 위로 하얀 두건을 쓴 그녀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몸짓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이는 하얀 물소중이를, 어떤 이는 까만 물소중이 위에 물적삼을 겹쳐 입은 채였다.

그들의 중심에는 큰언니 순임이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칼과 깊게 파인 주름 사이로 배어 나오는 온화한 미소는 그녀가 살아온 세월의 깊이를 대변했다. 그 양옆으로 앉은 명옥은 다정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경청했고, 옥분은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터뜨리며 동료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 뒤로는 말숙과 영희가 자리를 잡았다. 동그란 눈망울을 빛내며 손끝으로 어구를 매만지는 말숙과, 아직 세상의 풍파를 채 겪지 않아 뽀얀 피부 위로 청초한 기운이 감도는 영희는 이들의 대화 속에 녹아들었다.

“울릉도 앞바다에는 물고기가 억수로 많다던데. 전복에 문어, 멍게까지…. 제주 바다보다 훨씬 풍요롭다 안 하나.”

순임이 울릉도 상인에게 들은 말을 꺼내자, 해녀들의 눈동자에 작은 희망이 서렸다.

“어머,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엔 좀 벌 수 있겠네요. 인제 그만 뭍으로 나가 제대로 된 집 한 채 마련해야 하지 않겠어요?”

명옥이 밝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 목소리에는 고단한 삶 끝에 매달고 싶은 갈망이 섞여 있었다.

“어데요, 저는 요! 제주 앞바다에 큰 집을 짓고 평생 바다만 바라보며 살랍니다. 돈 걱정 없이, 물론 물질은 안 하고 말이죠.”

옥분이 짐짓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말숙과 영희가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나, 윤서 어미는 걱정이 많을 게다. 저 어린 것이….”

순임의 시선이 선미에서 어린 윤서를 안고 있는 해란에게 머물렀다.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여. 저렇게 천방지축 뛰어다닌 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영 안 놓여. 윤서가 아직 숨도 오래 못 참는데, 괜히 따라나선 게 아닌지 몰라.”

명옥이 맞장구를 치며 한숨을 내뱉었다.

“어미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바다에 남편을 잃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신세니…. 딸내미만큼은 물질은 안 시키고 싶었겠지.”

순임이 안타까운 시선을 거두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윤서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 머리를 땋고 있었다. 아직 열네 살인 윤서의 얼굴은 백옥처럼 하얀 피부와 동그란 눈망울이 어우러져 맑고 투명했다.

그 아이를 보살피는 해란의 손길은 거친 바다를 견뎌온 세월만큼이나 단단하고 야무졌다. 검게 그은 피부 아래로 드러나는 맑은 눈동자에는 그 어떤 여인보다 강인한 생명력이 박동하고 있었다.

“윤서야….”

해란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에 섞여 파르르 떨렸다.

“네, 엄마.”

윤서가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눈을 맞췄다.

“물질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해란은 아이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네.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수영 잘해요.”

해란은 아이를 큰집에 맡기려 했으나, 울고불고 매달리는 윤서를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아빠를 향한 그리움이 아이의 고집으로 번진 것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맑은 윤서의 대답에 해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바다가 아빠를 데려갔는데도 괜찮아?”

해란의 목소리가 물기 어린 채 갈라졌다.

“... 아빠가……. 음……. 아빠가 그랬어요. 바다에 나갔다가 어느 날 돌아오지 못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아빠는 바다랑 함께 우리 가족을 지켜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조금 슬픈데……. 괜찮아요.”

윤서는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래 우리 착한 딸, 씩씩하기도 해라. 그래도 바다는 항상 조심해야 해.”

윤서의 씩씩한 대답이 해란의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해란은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젖은 눈을 감았다.

“엄마, 근데…. 이건 뭐예요?”

윤서가 해란의 손에 들린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은 테왁이고, 이건 망사리란다. 헤엄칠 때는 이렇게 가슴에 끼고, 물속에 들어가서 잡은 전복이나 소라, 멍게는 여기 망사리에 담는 거야.”

해란이 어구를 들어 올려 보였다.

“이건 어디서 났어요?”

윤서의 손이 차가운 망사리 표면을 조심스레 훑었다.

“아빠가 만들어 준거란다….”

해란은 애써 삼켰던 눈물을 비집고 흘리며 말끝을 흐렸다. 윤서는 그런 어머니를 품에 꼭 안았다.

제주에서는 남자들이 테왁을 만들었다. 해란의 테왁은 남편 무영이 죽기 며칠 전, 너무 낡았다며 새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삼켜버린 바다가 죽기보다 싫었으나, 삼일장을 치르고 홀로 남겨진 딸을 보며 그 바다를 다시 마주해야만 했다. 제주의 바다는 아름다운 만큼이나 잔혹했고, 먼바다로 나간 남편을 앗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어도 사나(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이어도 사나)”

“요넬 젖엉(요넬 젖엉)”

“어딜 가리(어딜 가리)”

노랫소리가 파도를 타고 번졌다. 순임이 해란의 시선을 읽고 먼저 목청을 높였다. 그것은 위로이자, 같은 바다를 견디는 자들의 연대였다. 해녀들은 익숙한 듯 화음을 보탰다.

“울릉도 바다(울릉도 바다)”

“독도로 가세(독도로 가세)”

노랫소리에 배가 슬픈 듯 출렁였다. 봄 바다는 잔잔한 푸른빛을 띠다 가도 어느새 세차게 파도를 일으키며 회색 빛으로 변했다. 하늘에 걸려 있던 조각구름은 사라지고, 먹구름이 짐승처럼 몰려왔다.

“하늘을 보니까 비가 올 것 같아. 어구들 안 날아가게 꽉 묶어 놓아요.”

만덕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외쳤다. 해녀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어구를 배에 고정했고, 필성은 폭풍을 대비해 돛을 거칠게 접었다.

“엄마! 섬이에요. 이제 다 왔어요!”

바다를 주시하던 윤서가 섬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고단한 여정 끝에 마주한 땅을 향해 아이의 목소리가 높게 튀어 올랐다.

그때였다. 윤서가 저 멀리 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그 곳에서는 어부가 설치한 그물에 작은 물개 한 마리가 걸려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엄마! 저기 보세요! 물개가 그물에 걸렸어요! 구해야 해요!”

윤서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 파도가 배를 그물 근처로 밀어 올렸다. 누가 말릴 틈도 없었다. 윤서는 입에 작은 칼을 문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윤서야! 위험해! 어서 나와!”

“아이고 윤서야! 들어가면 안 돼, 어서 나와!”

뒤늦게 윤서를 발견한 해란과 어른들의 비명이 파도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러나 윤서는 멈추지 않았다. 오직 그물을 끊어내어 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쿠구쿵. 쏴 아악!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바람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파도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보다 못한 해란이 딸을 향해 거친 물살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물개야, 괜찮아. 괜찮아, 물개야.”

윤서가 다가서자 놀란 새끼 물개가 온몸을 비틀며 바둥거렸다. 윤서는 아이 같은 손길로 녀석을 부드럽게 달랬다. 녀석의 거친 숨이 점차 잦아들며 안정을 되찾았다. 윤서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이 넘실거렸지만 윤서는 그 리듬에 맞춰 그물을 잘라냈다. 거친 그물을 거의 다 잘랐을 때, 누군가의 거친 손이 윤서의 손목을 낚아챘다.

“윤서야! 위험해! 인제 그만 가자!”

해란이었다. 갑작스러운 해란의 등장에 새끼 물개가 놀라 몸부림쳤고, 그 물결에 휩쓸린 두 모녀는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해란은 윤서를 물위로 끌어올렸지만, 곧 거센 파도가 덮쳐 두 모녀를 다시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해란은 필사적으로 윤서의 손을 붙들었지만, 바다의 거친 물결 속에서 손끝에 걸린 딸의 온기를 잃고 말았다.

“윤서야~!”

제주 해녀들이 파도에 떠밀려온 해란을 잡아끌어 올렸다. 둘 다 잃을 순 없다는 절박함에 그녀들의 비명이 비바람 속에 갈갈이 찢겨 나갔다.

마치 차가운 촉수처럼 바다에 휘감긴 윤서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점차 의식을 놓아갔다. 절망의 심연으로 가라앉는 순간, 정체 모를 푸른 빛이 일렁이며 다가왔다. 생전 처음 보는 기묘한 빛이었으나, 그 안에는 생전에 느꼈던 가장 따스한 품속의 온기가 서려 있었다.

빛이 닿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다. 옥죄던 그물이 맥없이 풀려나갔고, 자유를 얻은 새끼 물개가 파도를 가르며 윤서에게 다가왔다. 녀석은 윤서를 태우고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파도 소리 너머로 누군가의 낮은 울림이 들리는 듯했고, 윤서는 그 신비로운 온기에 몸을 맡긴 채 깊은 잠 속으로 침잠했다.

거센 파도 사이로 해란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잔인했던 폭풍우가 잦아들고, 울릉도 해안가에는 눈 부신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해안가에 윤서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그 앞을 한 마리 새끼 물개가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다. 녀석은 차가운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코와 머리로 윤서의 옆구리를 연신 밀어 올렸다.

“콜록, 콜록!”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자, 희뿌연 잔상이 일렁였다. 그것은 이내 따스한 푸른 빛을 띠다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일어나! 일어나!)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는 듯한 환청과 함께 윤서가 폐부 깊숙이 고인 바닷물을 토해냈다. 그런 윤서를 바라보며 물개는 기쁨에 겨운 울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윤서야~! 윤서야!!”

제주 해녀들이 탄 어선이 해안가를 돌며 애타게 소리쳤다. 물개는 그 소리를 듣고 어선을 향해 울부짖었다.

“엉~ 엉!”

“저기, 저 윤서 아냐?”

만덕이 물개 곁에 쓰러진 윤서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맞네. 맞아, 아이고 윤서 맞네!”

안도한 해녀들의 목소리가 번졌다. 해란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다로 뛰어들어 해안가를 향해 거친 헤엄을 쳤다.

“윤서야!”

(또 만나자….)

해안가에 닿은 해란이 달려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딸을 가슴 깊숙이 끌어안았다. 새끼 물개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마치 작별 인사를 건네듯 고개를 까닥이고는 다시 깊은 바다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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