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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고전 소설] 홍길동전 2화 - 호부 호형

by peytonkim 2026. 7. 31.

원작 : 허균 (36장 완판본)

글 : Peyton Kim, AI (Gemma4)

그림 : Copilot


◇ 홍길동전 2화 - 호부 호형 ◇

달빛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방안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촛불과 달빛에 의지한 어린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 여덟 살배기 길동이었다.

길동은 이미 천자문과 소학을 떼고 사서삼경을 읽고 있었다. 홍문은 대청마루에 앉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하늘이 내려준 영재이거늘... 하필...'

"대감, 오늘도 퇴청하시자마자 길동이를 찾으십니까?"

내당에서 나온 부인 유씨가 홍문을 발견하고 핀잔을 주었다.

"오셨습니까. 아버지... 흡! 송...송구하옵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길동이 황급히 뛰어나와 무릎 꿇고 절을 하며 말했다. 그러나 실수를 한 듯 당황하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이 녀석이 그리 일렀거늘 또! 따라오너라!"

"부인! 아직 어린 아이지 않소."

"이미 사서삼경을 읽는 아이입니다. 어릴 때부터 단단히 일러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체통을 지키십시오. 남들이 보면 뭐라 하겠습니까! 뭐 하느냐, 가서 회초리를 가져오너라."

"네! 큰어머니!"

길동은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회초리를 들고 왔다. 부인 유씨는 대청마루에 앉아 회초리를 받아 들었다. 툇마루 너머로 밤공기가 서늘하게 흘렀고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슬피 들렸다.

"종아리를 걷거라!"

"잘못했습니다. 큰어머니!"

"네 아버지를 무엇이라 칭해야 하느냐?"

"대감마님!이옵니다."

"그걸 잘 아는 녀석이 어찌 자꾸 그러느냐!"

길동이 바지를 걷어 올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매끄러운 종아리가 달빛 아래 하얗게 드러났다.

짝-! 짝-!

홍문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예법이 이러한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부인의 말이 하나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질 소리가 밤공기를 가를 때마다 그의 심장 한쪽이 조여왔다.

"흠흠. 부인!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다음번에 또 그러면... 회초리로 끝나지는 않을 터이니 그리 알거라!"

"네! 큰어머니!"

부인 유씨의 호통에 길동은 눈물을 훔치며 회초리를 받아 들고 홍문에게 인사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길동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홍문이 말했다.

"원통하구려! 그때 당신이 내 말을 들었어야 했소."

"무엇을 말입니까?"

"저리도 영특한 아이를... 당신 뱃속에서 낳았더라면 천한 신분이 되었겠소?"

부인 유씨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한 뒤, 눈에 습기가 차오르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겠습니까? 후회해 본들 이미 늦어버린 것을..."

홍문도 그런 부인의 마음을 아는지 아무 말 없이 글 공부를 하는 길동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등불에 그림자가 벽에 길게 늘어져 흔들리고 있었다.

"이만 들어가십시다.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면 그 아이의 운명 또한 하늘이 인도하겠지요."

홍문은 부인을 다독이며 내당으로 들어갔다.

정적이 흘렀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길동의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낮게 들렸다. 길동은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그러고는 조용히 서책을 덮고 방 밖으로 나와 뜰을 거닐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칠월 보름. 달은 유난히 크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쓸쓸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며 나부끼는 소리와 기러기 우는소리가 길동의 외로운 마음을 더욱 북돋고 있었다.

길동은 홀로 탄식하며 말했다.

"무릇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문무를 겸비하여 출장입상해야 할 지인데... 신분이 이러하니..."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의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꼭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 했거늘! 어찌 나는 안 된다는 것인가... 문무를 겸비한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억눌린 울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하물며 천인들도 부모와 형제를 부모, 형제라 부르는데... 왜 나만 안 된다는 것인가."

눈에 고인 눈물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는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작은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천한 신분이라 하여 뜻마저 천할 수는 없지! 이제 그만 떨쳐내야 해!'

뜰을 거닐던 길동은 어느새 무예 수련장에 와 있었다. 목각 인형들과 활과 화살, 연습용 검이 조심스레 놓여 있었다. 길동은 조심스럽게 연습용 검을 집어 뽑아 들었다. 서슬 퍼런 칼날이 달빛을 받아 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달빛 아래 은빛 궤적이 그려지고 있었다. 검을 든 길동의 검무에 맞추어 은빛 광채가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쇠붙이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적막한 밤공기를 찢었다. 모든 것을 잊고 오직 검무에 매진하는 길동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홍문은 심란한 마음을 금할 길 없어 달이라도 볼 요량으로 창문을 열었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검무를 추는 길동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허허. 나보다 더 심란한 녀석이 저기 있었구나.'

홍문은 말없이 한참 동안 길동을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밤이 깊었는데 무엇을 그리 즐거워하느냐? 검무가 재미있더냐?"

놀란 길동이 칼을 집어던지고는 황급히 흙바닥에 엎드려 말했다.

"소인이 대감의 정기를 이어받아 이렇게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길동은 울컥하며 말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평생토록 서러운 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그것이 천추의 한이옵니다. 집안의 상하 노복들이 모두 저를 천하게 보고, 친척들과 이웃들마저 손가락질하며 '누구누구의 천한 자식'이라 이르니... 이토록 원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길동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통곡했다. 흙먼지가 그의 옷자락에 묻어났다.

'불쌍한 내 아들... 그러나 참아야 한다. 더 방자하게 굴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려면 더 독해져야 해.'

홍문은 그를 보면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그것을 억눌렀다.

"쯧! 재상 가문의 집안에서 천인 소생이 된 것이 어디 너뿐이더냐!"

홍문은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어디서 그런 방자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냐?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입에 올린다면 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야. 그만 물러가거라!"

길동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길동을 바라보는 홍문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서며 창문을 세차게 닫았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길동은 한참 동안 그렇게 엎드려 있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어미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통곡했다.

"어머니! 전생의 인연으로 이번 생에 모자지간이 되었으니, 저를 낳고 길러주신 은혜는 끝없는 하늘 같사옵니다. 하지만 사나이가 세상에 태어나 공명을 세우고 부모의 양육 은혜를 만 분의 일이라도 갚아야 하거늘... 이 몸은 팔자가 기박하여 천한 신분이 되어 남의 천대나 받고 있으니, 대장부가 어찌 구구하게 근본이나 따지며 후회하며 살겠습니까!"

춘섬은 놀라 아들의 등을 쓰다듬었다.

"얘야, 무슨 일이 있었느냐? 어찌 그러느냐! 네 말을 들으니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길동은 눈물을 훔치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소자 결심했사옵니다. 이제 세상의 영예와 욕됨을 모두 잊고 깊은 산중에 숨어 살고자 합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완전히 버린 셈 치시고 잊고 계십시오. 훗날 제가 다시 돌아와 까마귀가 어미를 먹이듯 효도를 다할 날이 올 것입니다."

길동의 눈빛에는 이미 결심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여덟 살 아이의 의지가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 춘섬은 그의 야윈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내 너의 결심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넌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되지 않았느냐. 이 어미의 얼굴을 봐서라도 아직은 참아보거라. 앞으로 대감께서 잘 처결해 주실 것이니..."

길동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단호하게 말했다.

"부모와 형제들의 천대는 둘째 치고, 노복들이나 아이들이 틈만 나면 내뱉는 말이 뼈에 사무칠 지경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곡산모(초낭)의 행동을 보니 아무 죄 없는 우리 모자를 독수리처럼 눈여겨보며 죽일 뜻을 품고 있으니 머지않아 목전에 큰 화가 닥칠 것이옵니다. 제가 떠난 뒤에도 모친께는 후환이 미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두겠사옵니다."

춘섬은 길동의 말을 들으며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러나 곡산모께서는 어진 분이신데 설마 우리를 해하려 하겠느냐!"

길동은 굳은 표정으로 춘섬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세상일을 어찌 다 짐작하시겠습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였습니다. 어머니, 부디! 제 말을 헛되이 흘려듣지 마시고 앞으로 닥칠 일을 잘 보시옵소서."

춘섬은 아들의 눈에 서린 그늘을 읽어내며 가슴속에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래, 길동아. 네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 쉬도록 하여라.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길동은 어머니께 절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문턱 너머로 비치는 달빛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춘섬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밤바람이 창호지를 흔드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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