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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고전 소설] 홍길동전 4화 - 자객

by peytonkim 2026. 8. 2.

 

원작 : 허균 (36장 완판본)

글 : Peyton Kim, AI (Gemma4)

그림 : Copilot

 


 

◇ 홍길동전 4화 - 자객 ◇

 

달빛이 창살 틈으로 스며들어 방바닥에 차갑고 창백한 무늬를 그렸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마른 먹 향이 방안을 맴돌았다. 길동은 등을 곧게 펴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린 채 책의 모서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하아, 으아악...!"

그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거칠게 쥐어뜯었다. 가늘게 떨리는 손끝이 두피를 파고들었고,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신음은 정적 속에 날카로운 균열을 냈다. 그는 책상을 내리쳤다. 쾅! 둔탁한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빈 방의 공허한 메아리와 창밖에서 들려오는 밤벌레들의 무심한 울음소리뿐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왜! 왜 읽히지가 않는 거냐고!"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눈앞의 서책은 여전히 그를 조롱하고 있었다.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 내려간 먹선들은 분명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길동은 그것을 읽지를 못했다. 길동의 시선이 닿는 순간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제멋대로 뒤엉켰다. 영재라는 찬사와 함께 그가 평생을 걸어온 세상에서 이 책은 유일하게 넘지 못한 거대한 벽이었다.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땀에 젖은 이마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와 턱 끝에 맺혔다. 그 순간, 기억의 파편이 뿌려졌다. 그것은 환청이었고, 동시에 선명한 현실이었다.

***

"허허, 이제는 더 읽을 책이 없더냐? 그 기이한 책까지 손을 대는 것을 보니!"

서재 안 공기는 무겁고 정체되어 있었다. 먼지가 빛의 기둥 속에서 느릿하게 춤췄다. 홍문은 길동이 집어 든- 구석진 곳에 놓여 있던 색 바랜 낡은- 서책을 가리키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의 손등에 새겨진 굵은 힘줄이 그가 평생 잡고 있던 권위의 무게를 말해주었다.

"대감마님! 이 책은 어떤 책입니까?"

길동의 목소리가 호기심으로 들떴다. 홍문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기묘한 흥미와 경계심이 교차했다.

"알 수 없단다. 그저 읽을 수 없어 버려둔 책일 뿐이란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한자가 이리 선명히 보이는데 어찌 읽을 수 없다 하십니까?"

홍문은 길동에게 다가와 서책을 집어 들었다. 손끝에 닿는 질감이 거칠고 건조했다. 그는 표지를 천천히 쓸어내렸고 그로 인해 보이지 않는 먼지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아무런 제목도 없이 세월의 때가 눌어붙은 가죽 표지만이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책은 말이다. 수년 전 어느 도인에게서 받은 것이야!"

"도인이요? 도인이 실제로 존재한답니까?"

길동의 질문에 홍문의 웃음기가 잠시 잦아들었다. 그는 먼 곳을 응시했다.

"그것은 알 수 없지! 다만 그 자가 스스로를 도인이라 하더구나. 임금님을 모시고 사냥터로 향하는 길목에서... 절벽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한 노인을 구한 일이 있었어. 그 자가 고맙다며 내민 것이 바로 이 책이란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완성한 책이라며 요긴하게 쓰라 더구나."

"그리 대단한 것을 어찌... 그냥 협잡꾼이 아닐는지요?"

길동의 의심 섞인 말투에 홍문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함이 깔려 있었다.

"나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다만... 그 자의 행동이 기이했어. 책을 던져 주고는 바람 소리 하나 남기지 않고 물구나무를 서서 귀신같이 사라지더구나. 수련 중이라면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여겨 서재에 보관한 것인데 정작 한 구절도 그 뜻을 풀지 못하고 있으니... 그래서 구석에 방치된 것이야!"

홍문은 서책을 길동의 손에 얹어주었다. 가죽 표지가 차가웠다.

"그럼 이 세상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허허, 글쎄다. 그 서책을 쓴 도인이라면 모를까... 만약 네가 이 서책을 읽어 낸다면 내 너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마! 그리고 읽게 되면 이 아비에게도 그 뜻을 알려주거라!"

그는 길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은 따뜻했지만 그의 눈 속에 담긴 기대감은 무겁고 집요한 사슬처럼 느껴졌다.

"예! 꼭... 반드시 읽어 내겠습니다."

"그래, 그래!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게야!"

* * *

"... 이럴 리가 없어!"

길동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길동은 앉아서 다시 책상 위에 놓인 서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그 기묘한 도인의 전설도, 이 책이 품고 있다는 신비로운 힘도 지금은 한낱 고문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분명 글자는 보이는데! 왜 뜻이 이어지지 않냐고!"

그는 다시금 서책을 낚아채듯 잡아들었다. 손가락 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창밖의 달빛은 여전히 시리고 방안의 공기는 숨 막힐 듯 무거웠다. 하지만 길동의 눈에는 지독한 갈증과 함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집착이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앜... 일단 머리라도 식혀야겠다.'

길동은 책을 품속에 넣고 문밖으로 나섰다. 서늘한 밤공기가 폐부를 찔러지만 가슴속 답답함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는 홀린 듯 무예 수련장 옆 큰 나무로 향했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늘 오르던 곳이었다. 단숨에 내달려 나무 위로 껑충 올라가자, 달빛을 받은 마을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요한 지붕들과 잠든 집들. 그 풍경이 아주 잠깐 가슴의 답답함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길동은 충동적으로 가지를 붙잡고 몸을 뒤집어 거꾸로 매달렸다. 세상이 뒤집혀야 이 지옥 같은 갈증이 가실 것 같았다.

툭! 그 순간, 품속의 서책이 바닥에 떨어졌다. 밤바람이 불어와 책장이 파르르 넘어갔다.

"아차! 책이 있다는 걸 깜박했네..."

나무에서 뛰어내리려는 길동의 시선이 바닥에 펼쳐진 책에 닿았다. 거꾸로 뒤집힌 채 놓인 그 글자들이 달빛을 받아 기묘한 형상을 띠고 있었다.

"어? 잠깐, 이건..."

길동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가 이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깨달음은 번개처럼 찾아왔다.

'그래 이거였어! 도인의 기이한 행동이 바로 암시였단 말인가!'

길동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전율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이 서책은 읽는 방식을 달리해야 했던 거야... 오른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왼쪽 아래에서부터 위로 읽어서 올라가야 했던 것! 이게 이 책을 읽는 방법이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깨달음의 순간이 가져다주는 쾌감에 몸서리를 쳤다.

"아하하하! 그 도인이라 분 기묘한 방식으로 써놓다니!"

길동은 나무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 책을 집어 들고는 미친 듯이 읽어 내렸다. 글자들은 더 이상 어지러운 미로가 아니었다. 답은 명료했다.

서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손자병법의 비술'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선의 기운을 부르는 '육정육갑 술법'이었다.

"이것은 그냥... 책이 아니었어! 천지조화를 일으키는 도술!... 그 자는 진짜 도인이었던 거야!"

길동의 눈이 번뜩였다. 오직 이 책에만 손자병법에서 실전된 후반부의 비술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어지는 육정육갑 술법은 더욱 경이로웠다. 기를 수련하고 단전에서부터 기를 끌어올리는 법, 부적을 그리고 그 부적을 매개로 수인을 맺고 기를 흘려 넣어 주문을 외워 12지신의 권능을 빌려 쓰는 신묘한 도술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날부터 길동은 몇 날 며칠을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끼니도 거르며 그 서책에 빠져들어 수련에 매진했다.

길동의 방 앞, 홍문은 차마 길동을 부르지 못하고 그 앞을 서성였다. 살짝 열린 방문 틈 사이로 길동은 서책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홍문은 그런 길동의 사정은 모른 채 그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문 앞에는 이미 식어버린 밥상이 놓여 있었다.

'... 그래, 차라리 미쳐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홍문의 눈동자에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그는 길동의 초췌해진 안색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그 도인이 이 아이의 앞날을 미리 본 것인가? 아니면 저 서책이 인간을 탐하는 괴물인 것인가?'

홍문은 그저 먼발치에서, 서책에 매달린 길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책에 미쳐 살거라. 세상의 울분이 다 가라앉을 때까지... 그 책 속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세월의 시름도 다 사라지겠지. 차라리 잘 된 것인지 모르겠구나.'

홍문은 차마 길동을 부르지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 길동의 방안.

어두운 공간에 흔들리는 등불 하나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길동은 서책을 앞에 두고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단전에 손을 모으고 숨을 천천히 내쉬자, 방 안의 공기가 일렁이며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은 백회혈로 흘러 들어가 몸 구석구석을 누비며 단전에 자리했다.

'됐다! 성공이다!'

처음으로 쌓은 기였다.

"후우..."

그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책상 위에 놓인 부적을 집어 들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 끼고 단전의 기를 운용해 팔로 집중시켰다. 단전에 있던 기가 서서히 팔을 타고 손끝의 부적으로 들어가며 흐물흐물했던 종이가 빳빳하게 펴졌다.

"갑자 장수 원덕! 불을 뿜어라! 급급여 율령!"

그러자 부적이 타오르며 작은 불길이 뿜어져 나와 방 안을 밝히더니 이내 사라졌다.

'성공이다! 기가 턱없이 모자라구나. 아직 수련이 더 필요해!'

길동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다시 단전에 손을 올리며 집중했다. 기를 모으는 그의 호흡이 깊어졌다.

그때였다,

깍-! 깍-! 깍-!

밤의 정적을 찢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기이한 일이로다. 이 야심한 시각에 까마귀가 울다니! 낯선 이가 온 것인가? 혹시 모르니 대비를 해야겠다.'

까마귀가 날아가는 소리! 창호지에 어린 불길한 그림자! 길동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에 뒷덜미의 솜털이 곤두섰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며 북소리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머릿속은 얼음 물을 끼얹은 듯 명징하게 가라앉았다.

'아직 도술을 쓰기엔 무리다. 수련이 더 필요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책상 아래 있던 바둑알을 꺼내어 집어 들었다. 차가운 흑돌의 촉감이 손끝에 닿았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단전에서 끌어올린 기를 손가락 끝으로 밀어 넣었다. 첫 번째 알을 바닥으로 던졌다.

"남방의 이허중은 북쪽으로! 감중련의 자리에 들어앉아라!"

바둑알이 닿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남쪽 벽면에서 보이지 않는 기류가 휘몰아치며 북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길동의 손길은 이제 폭풍처럼 빨라졌다.

"동방의 진하련! 서방 태상절의 자리를 지켜라!"

"건방의 건삼령! 손방의 손하절로 옮겨가라!"

"곤방의 곤삼절은 긴방의 긴상련을 향해라!"

바둑알이 놓여 질 때마다 방 안에서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 벽들이 부딪치고, 기운과 기운이 충돌하며 비명 같은 파열음이 터젼 나왔다. 사방의 결계는 엉키고 뒤섞이며 완전히 새로운 위상의 진법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자병법의 비술서에 기록된 팔진도였다.

배치를 마친 길동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방 안의 불을 끄고 방 한가운데 정좌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감고 단전에 손을 모아 기를 끌어모았다, 방금 사용한 기운으로 텅 비어 있었다.

'모든 기를 소진했다! 남아 있는 부적은 네 장뿐인데... 기를 모을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그 시각, 자객 특자는 비수를 품고 은밀하게 담장을 넘었다. 그런데 갑자기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나무 위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불길한 징조다! 그만두고 돌아가자! 보통이 넘는 아이라 하더니! 산 짐승까지 그 아이를 수호하는구나!'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품 속에서 은자를 꺼내 보았다. 차갑고 묵직한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성공하면 이 은자의 열 배가 아니던가... 평생 만져 볼 수도 없는 돈! 그래봤자 아이일 뿐이다! 며칠간 지켜봐왔지만 그냥 검 조금 쓸 줄 아는... 아직은 아이일 뿐이다. 겁먹을 필요 없어!'

특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욕망이 공포를 집어 삼 겼다. 그는 조심히 비수를 뽑아들었다. 달빛 아래 검날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는 조심히 길동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길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놈... 수련 중이구나! '

특자는 방안으로 몸을 날려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길동의 모습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갑자기 일진광풍이 몰아치며 천둥 소리가 방 안을 뒤흔들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끝없이 펼쳐진 천 개의 봉우리와 만 갈래 골짜기, 그리고 넘실거리는 대해였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이냐? 여긴.... 어디고?'

그는 몹시 당황했다. 자욱한 안개와 구름 때문에 방향을 분별할 수도 없이 정신이 아득해졌다.

'난 분명 방 안에 들어왔는데... 산과 바다가 나타나다니, 분명 그 아이의 모습을 보았는데!'

특자는 비수를 날려보았다. 하지만 안갯속으로 사라진 비수는 공허한 소리를 내며 어딘가에 박혔다.

'환술인가? 그래 차라리 눈을 감자!'

특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지럽던 세상이 삽시간이 고요해졌다. 숨이 막힐 듯이 정적이 흘렀다.

길동은 특자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새 진법의 단점을 파악한 것이었다.

'진짜 대단한 자객이구나...'

길동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툭! 땀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며 바닥에 떨어져 소리를 냈다.

'아차!'

"거기구나!"

특자는 품속에서 또 다른 비수를 꺼내 빠르게 내던졌다. 비수가 길동을 향해 날아왔다. 길동은 몸을 굴려 황급히 몸을 피했다. 날아온 비수가 방바닥에 박혔다.

우당탕탕-!

소란이 일었다가 일순 조용해졌다. 특자는 품속에서 또 다른 비수를 꺼내 들었다. 길동은 마른침을 삼키며 손에 기를 모아 옆에 있던 바둑돌을 조심히 옮겼다.

진법을 변화 시켜 환술에 환청까지 더한 것이었다. 어디선가 옥 피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특자는 눈을 감은 채 비수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사방에서 피리 소리가 들리는 탓에 방향을 잡지 못했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그러자 청의동자가 백학을 타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꾸짖었다.

"너는 누구기에 이 야심한 시각에 남을 해치려 하느냐?"

특자는 당황하여 외쳤다.

"네놈이 길동이렷다! 나는 네 부형의 명을 받들어 너를 죽이러 왔다!"

그는 청의동자를 향해 비수를 던졌다. 그러나 청의동자의 모습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음산한 바람과 벽력만이 가득했다.

슉-!팍!

파공음이 일며 갑자기 날아온 비수가 특자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볼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길동이 특자가 던졌던 비수를 주워 되던진 것이었다.

"내 재물에 눈이 멀어 사지로 들어왔구나!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죽어라! 이놈!"

특자는 겁에 질려 품속의 비수들을 마구 날렸지만 길동은 여유롭게 피하며 벽에 박힌 비수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바둑돌을 움직였다. 특자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사방에 천 길 낭떠러지가 나타났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위에 매달렸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왔느냐! 바른대로 말하거라!"

사방에서 길동이 호통치는 목소리가 들렸고,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잘린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특자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애원했다.

"살.... 살려주십시오. 소인 분수도 모르고 감히 도련님의 방을 범했나이다. 이것은 다 작은 마님과 관상녀가 사주하여 한 짓입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그때 길동이 공중에서 비수를 든 채 나타나 외쳤다.

"네놈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쳐 오늘 내 손을 빌려 악한 무리를 없애게 하시는구나! 너를 살려둔다면 훗날 더 많은 이들이 다칠 것이니, 어찌 살려 보내겠느냐!"

길동은 망설임 없이 특자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분노로 몸이 떨렸다.

"기어이 소자를 죽이려 하시는군요. 작은 어머니!"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떨어졌다. 길동은 품 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기를 불어넣으며 외쳤다.

"정축 옥녀 문공! 나의 그림자를 만들어라! 급급여 율령!"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속에서 길동과 똑같이 생긴 분신이 나타났다.

"가서! 관상녀를 잡아오너라!"

"그래! 갔다 올게! 히히"

길동의 분신이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면 문을 열고 밖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관상녀를 어깨에 둘러메고 돌아왔다.

"데려왔어! 이제 뭐 할까? 내가 좀 데리고 놀아도 돼? 재미있을 거 같은데..."

길동의 분신이 관상녀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찔러 보며 장난기 어린 미소로 말했다.

'으... 분신술이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딱-! 길동은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펑-! 소리와 함께 분신이 사라지며 검게 변해버린 부적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이 요망한 년! 썩 일어나지 못할까?"

길동의 호통 소리에 혼절해 있던 관상녀가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특자의 시신을 보고는 혼비백산하여 바닥에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도련님! 살... 살려주시옵소서!"

관상녀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길동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네년이 감히 재상의 집에 드나들며 속된 말로 사람을 현혹하여 인명을 해치려 했으니, 네 죄를 알겠느냐?"

"소인의 죄가 아니 옵니다. 작은 마님께서 시키신 일이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관상녀는 울며 빌었지만 길동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초낭은 나의 의모라 논할 수 없으나, 너 같은 악종을 살려둔다면 필시 다른 사람들을 해할 것이다. 너의 그 세 치 혀를 탓하거라!"

"제발... 윽!"

길동은 가차 없이 그녀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 안은 피가 낭자했고 두 구의 시신이 나뒹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붉게 물든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칼을 떨어뜨렸다.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나? 초낭은 그래도 나의 의모인데 어떻게 해야 되지? 일단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야겠지! '

길동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처소 밖을 나와 홍문의 처소로 향했다. 먹구름이 어느덧 달마저 집어삼키고 완연한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 소란한 와중에도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돌연 서글프게 다가왔다. 초낭의 처소가 눈에 들어왔다. 분노로 몸이 떨리며 발걸음을 멈추고 주먹을 꽉 쥐었다.

'살려두면 어머니가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을 텐데... 어쩐다 말인가? 작은 어머니! 왜 그러셨어요! 대체 왜!'

분노는 뜨거운 불덩이가 되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니다 아니야 여인부아언정 무아부인이라 하지 않았던가! 부모가 자식을 버릴지언정 자식이 부모를 어찌 버리겠는가! 내 일시의 분노로 어찌 인륜을 끊을 수 있겠는가?'

길동은 마음을 굳게 먹고 홍문의 처소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처소 앞에 엎드린 그의 무릎이 차가운 흙바닥에 닿았다.

"대감마님! 소자 홍길동이옵니다. 부디 나와보시옵소서."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잠시 후, 안쪽에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리고 방안에 불이 켜지며 이내 창문이 열렸다. 등불에 희미하게 홍문의 얼굴이 비쳤다.

"밤이 깊었는데 웬 소란이냐! 이 야심한 시간까지 왜 잠들지 않고 그러고 있는 게야?"

"집안에 흉한 변고가 생겨 목숨을 보전코자 떠나게 되었사오니, 대감마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러 왔습니다."

홍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무슨 일이 있길래 떠난다는 것이냐? 날이 밝거든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무슨 일인지 날이 밝으면 자연스레 아실 것이옵니다."

홍문의 손이 창틀을 꽉 잡았다. 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졌다.

"어허! 돌아가 잠을 자고 내 분부를 기다리라 하지 않았느냐!"

"대감마님! 소자 이제 이 집을 떠나 영영 나가오니 옥체 만강하시옵소서. 다시 뵈올 기약이 망연하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길동은 고개를 숙였다. 홍문은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깊은 한숨이 어둠 속에 흩어졌다.

'기어코 이런 날이 오고야 마는구나! 언젠가 집을 떠날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이야. 비범한 아이니 억지로 붙잡는다 해도 듣지 않겠지.'

홍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이냐?"

"목숨을 건져 천지를 집 삼아 유람할 것이오니 따로 정해진 정처가 없사옵니다. 다만, 평생의 한이 가슴에 맺혀 억울함이 풀리지 않으니 이 마음이 더욱 서러울 따름이옵니다."

'가여운 녀석! 그래, 그 한이라도 풀고 가거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홍문은 아들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떠난다는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입을 떼었다.

"내 오늘 밤 너의 한을 풀어줄 것이니 천지를 유랑하더라도 죄를 짓지 말고 다시 돌아와 나의 마음을 위로해 다오! 필시 무슨 사정이 있을 터! 여러 말하지 않을 터이니 명심하거라!"

길동이 일어나 절하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소자의 오랜 소원을 풀어주시니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그래! 가거라!"

길동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는 등을 돌려 어머니의 처소를 향했다. 홍문은 뒤돌아서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창 너머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아들을 보며 담뱃대를 입에 물었으나 불을 붙이지 않았다. 마른 입술 사이로 연기 대신 적막만이 흘러나왔다. 그는 나직이 읊조렸다.

"꼭 가야만 하는 것이냐?... 잘 가거라... 몸 건강하고 잘 살고!"

춘섬의 방에서 희미하게 등불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들 처소에서 소란이 이는 소리가 들려 깬 것이었다.

"어머니! 소자 길동이옵니다!"

아들의 젖은 목소리에 놀란 춘섬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밖이 소란스럽더니 무슨 일 있는 게야?"

"어머니 안으로 들어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온 길동의 모습을 본 춘섬을 하얗게 질려 입을 막았다. 옷 곳곳에 검붉은 혈흔이 마른 꽃잎처럼 묻어 있었고, 눈이 붉게 충혈되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야? 이 피들은 뭐고? 어디 다쳤느냐?"

춘섬은 아들 옆에 바싹 다가와 앉았다. 거친 손마디로 그의 몸과 얼굴을 살폈다. 길동은 밤에 일어난 일을 소상히 전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문장 끝마다 떨림이 묻어났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춘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무릎 위에 놓인 손등 위로 굵은 마디가 도드라졌다.

"네 말대로 되었구나! 그 요망한 년이 결국 우리 모자를 해하려고 자객까지 불러들였어!"

길동은 어머니의 거친 손을 꼭 붙들었다. 손톱 밑에 낀 때와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어머니 걱정 마시옵소서! 내일 날이 밝으면 사실이 모두 밝혀질 것이오니 심려 마시옵소서! 소자 아버님께서 소인의 오랜 소원을 풀어주시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대감께서 아버지라 불러도 좋다 하더냐?"

"네 어머니!"

"그래 잘 되었구나! 잘 되었어."

춘섬은 아들의 손을 꼭 붙들고 등을 쓰다듬으며 어루만졌다. 거친 옷감 너머로 전해지는 온기에 그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곧이 어진 길동의 말에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어머니! 비록 자객을 죽였다 하나 죄인의 신분입니다. 관아에서 이 사실을 알면 모두에게 피해가 갈 것이옵니다. 하니 목숨을 보전코자 소자 이만 집을 떠나려 하옵니다. 저를 염려 마시고 몸조심하십시오. 다시 뵈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춘섬의 손길이 멈췄다. 그녀는 아들을 품에 안으며 볼을 어루만졌다.

"네가 잠시 화를 피해 나가 있더라도, 이 어미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꼭 돌아와야 하느니라! 네가 없으면 내가 어찌 살겠느냐."

"어머니!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먼 훗날 반드시 돌아와! 효도하겠나이다!"

길동은 어머니께 절을 올리고 일어서서 등을 돌렸다. 잠시 멈칫 하던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춘섬은 그런 아들의 뒤를 따라갔지만 어느덧 담장을 뛰어넘어 사라지는 뒷모습만을 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잘거라! 내 아들아! 무사히 잘 다녀오너라! 언제까지 이 자리에서 널 기다리마!"

춘섬은 아들 앞에서 내뱉지 못한 말을 나직이 읊조렸다.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

달빛조차 완전히 사라진 그 어두운 밤, 길동은 손에 쥔 횃불 하나에 의지해 길을 걸었다.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앞길을 겨우 비췄다. 갈 곳도 정해진 곳도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집의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편 부인 유씨는 며칠 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초낭을 말리지 못하고 마지못해 수긍한 것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팠다. 그녀는 밤마다 천장을 바라보며 길동의 얼굴과 검은 복면을 쓴 자객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어머니 기운 내시옵소서. 저 역시 마지못해 허락한 일이오니 그만 떨쳐 내시옵소서. 저 또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기운 내야지! 그래도 그 가여운 아이를 생각하면 ..."

"길동이 죽은들 어찌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다만,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를 더 극진히 모시고 길동의 시신을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지내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그렇게 밤에 일어난 변고를 알지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 부인 유씨의 말속엔 죽음을 가정하는 서늘함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길동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보다, 그가 죽고 난 뒤의 파장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동트기 전의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마당 끝에서 들려오는 우물 물 긷는 소리조차 숨죽인 듯했다. 초낭은 툇마루 끝에 앉아 손톱을 잘게 깨물며 발끝만 바라보았다. 어젯밤의 결심은 새벽안개처럼 흩어지고 없었다.

'대체 왜 소식이 없는 것이야? 결행하기로 한 날이 지났거늘!'

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묻듯 중얼거렸다.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때, 부엌 쪽에서 정적을 깨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게 있느냐?"

"예! 대감마님!"

아침 상을 준비하던 여종이 황급히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초낭의 눈에 어린 조급함이 화살처럼 꽂혔다.

"넌 지금 당장 길동이 처소로 가서 잘 있는지 보고 오너라?"

"지금 말입니까?"

여종의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 새벽부터 안부를 묻는 상전의 태도가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초낭은 눈을 흘기며 재촉했다.

"그래, 어서 당장 갔다 와!"

"네 마님!"

하인은 급히 고개를 숙이더니 길동의 처소를 향해 뛰어갔다.

잠시 후, 정적을 찢는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꺅-!

소리가 길게 이어지며 공기를 갈랐다. 초낭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야? 무슨 일이야?"

잠에서 깬 하인들이 옷가지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모두가 길동의 처소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방 안에는 길동은 온데간데없었고 자객 특자와 관상녀의 시신 두 구가 끔찍하게 뒤엉켜 놓여 있었다.

"작은 마님! 크.... 큰일 났사옵니다."

"큰일이라니! 빨리 말해 보거라! 길동이 죽기라도 했단 것이야?"

초낭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 속에는 기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하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 아니... 그것이 아니옵고 길동 도련님은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그 방에 남자와 여자의 시신이 있었는데 그... 여인이... 전에... 그... 관상을 보러 온 여인이었습니다."

"뭐라?"

초낭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버선발로 문을 박차고 나가 부인 유씨의 처소로 달려갔다.

"마님! 소첩 초낭이옵니다."

"그래! 어서 들어오시게! 한데, 왜 이래 소란스러운 게야! 어찌 된 게야?"

부인 유씨가 방문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엔 당혹감이 가득했다. 뒤에 서 있던 인형은 이미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 그것이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아무래도 계획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부인 유씨와 인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초낭의 말은 단조로웠으나 그 내용은 무거웠다.

"실패라니? 자세히 말을 해보시게!"

"그것이... 길동이는 온데간데없고 보낸 자객과 관상녀의 시신만 발견되었다 합니다."

"큰일이구나! 인형아! 가서 길동이를 좀 찾아보려무나!"

부인 유씨는 경악하며 아들의 팔을 잡았다.

"네! 어머니 제가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그 시간, 홍문의 방에는 남종이 찾아가 시신이 발견된 사실을 전했다.

"뭐라! 길동의 처소에서 시신이 나와?"

홍문은 버선발로 뛰쳐나가 길동의 처소로 향했다. 길동의 방은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끔찍한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한 가지, 책상 위에는 길동이 아버지께 쓴 편지와 자객의 품과 관상녀의 품을 뒤져 나온 서찰이 놓여 있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그 아이가 갑작스럽게 떠난다 해서 영문도 모르고... 보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니... 내 불찰이다! 내 불찰이야!"

"대감마님! 이것 좀 보시지요. 도련님께서 서찰을 남기고 떠나신 듯합니다."

남종은 책상 위에 놓인 서찰들을 가져다 홍문에게 주었다. 그는 서찰을 읽어 내려갔다.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에 박혔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정녕 사실이렸다! 이것이 감히! 당장 가서 초낭을 잡아 꿇어 앉히거라!"

"예! 대감마님!"

홍문은 서찰을 움켜쥐고 뜰로 나갔다. 남종들이 이미 초낭을 양쪽에서 붙들고 부인 유씨의 처소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부인 유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뒤따라 나왔다.

"놔라!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나를 이렇게 대하고도 너희들이 무사할 듯싶으냐!"

"대감마님의 명입니다."

"놔라 이것들아! 대... 대감마님! 이것들 좀 보십시오. 감히 제게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법이 어디 있답니까?"

초낭이 홍문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시끄럽다! 네 이년!"

"대감! 어찌 제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십니까?"

"이것이 모두 네년이 꾸민 일이렸다."

"제가 꾸민 일이라뇨?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홍문은 서찰을 그녀의 얼굴 앞에 거칠게 내던졌다. 종이가 바닥에 흩어졌다. 초낭은 바닥에 흩어진 서신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관상녀와 자객 특자와 주고받은 서찰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천하에 몹쓸 년 같으니라고 보아라! 네년이 이러고도 발뺌을 하려 드는 것이냐? 내 그리 일렀거늘... 몹쓸 말을 지어내고 음모를 꾸며 이 사단을 만들어? 내 네년을 찢어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지만 길동의 당부가 있어 살려두는 것이니 길동에게 고맙다 하거라! 지금 당장 이 집에서 나가거라!"

"대감! 살려주십시오! 이것이 대감께서 길동이만 싸고돌아 생긴 일 아닙니까? 제발 이번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초낭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애원했다. 그러나 홍문의 서슬 퍼런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시끄럽다 이년! 뭐 하느냐 저년을 당장 끌어내지 않고!"

"대감! ... 용서하여 주십시오! 대감! 대.... 감!"

홍문의 호통에 남종들이 달려들어 대문 밖으로 끌어내 내동댕이 쳤다. 흙먼지가 일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 대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고 빗장이 무겁게 걸렸다.

"지금 당장 은밀이 이 시신들을 처리하거라! 그리고 오늘부로 절대 이일이 밖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모두에게 입단속을 철저히 하라 일러두거라! 만일 이 일이 새어 나갈 시 그 즉시 모두 참형할 것이니 그리들 알라!"

"예, 대감마님!"

하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시신을 치우고 청소하기 시작했다. 홍문은 텅 빈 마당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속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뜨거운 덩어리가 되어 소용돌이쳤다. 그는 초낭을 내쫓았지만, 그 공허함마저 분노로 타올랐다.

 

※ 이 글은 AI를 활용하여 홍길동전 36장 완판본을 바탕으로 읽기 편하도록 각색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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